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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잃어버린 시간

아침에 눈을 떠 창밖에 펼쳐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가히 매일이 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 언듯 보면 똑같은 모습으로 지루한 하루를 또 맞이하는구나 느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시시각각으로 펼쳐지는 그 모습에서 지나온 세월(世月)을 반추한다.     오늘처럼 청명한 날에는 멀리 Met Life Stadium도 보이고 Teterboro Airport도 선명히 보이지만 안개가 짙게 낀 날에는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나면 학교 운동장에 모여드는 아이들도 보이고 줄줄이 서 있는 건물들이며  상점들이 하루를 열고 있다.     지나간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일까! 모든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생각이 들기에 오늘의 노년의 삶은 때로는 허무를, 때로는 의욕을 잃고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즈음 많이 든다.   지난 4월 초 월요일 아침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하나도 안 보일 때 웬일일까? 놀라면서도 허전하던 그 마음… 생각하니 요즈음 spring break란 것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던 생각이 난다. 이처럼 나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아이들한테도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것을 보며 나의 아이들 자라던 때를 떠올리다가 손자 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간 시간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삶은 이렇게 계속되는 것이구나 다짐을 했다.   내 집에서 멀지 않게 바라보이는 건물에는 ‘포부동’(soup Dumpling plus)이란  중국집이 있다. 무심(無心)히 쳐다볼 때는 몰랐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일주일에 세 번 트럭이 물건을 놓고 가는데 그 시간이 되게 아침 11시경에 들리곤 한다. 그 모습을 창 너머로 바라보면서 내 마음은 어느새 몇십 년 전 내가 브루클린에서 살 때 늘 좋아하던 ‘아침 11시’경이 물밀 듯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시간은 분주한 아침을 남편과 아이들이 병원과 학교로 떠나고 내 마음이 쉼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늘 ‘비발디의  4계’를 들으며 몇 시간 떨어져 사는 나의 친구와 수다를 떨곤 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실타래를 묶다가 지난 2007년 LA로 떠나고 말았다. 옛날 같지 않게 요즈음은 뜨막하게 지나는 사이가 되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그가 그립고 그 지나간 시간은 나에게 황금의 시간이었다. 가슴을 적신다.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의 쉼을 누리니 그와 지냈던 그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고 희망과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들의 발목을 잡았던 팬데믹도 주춤해 있는 요즈음 지나간 시간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싶다. 정순덕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시간 학교 운동장 세월 우리 spring break

2023-04-19

[이 아침에] 꽃을 닮았던 아이들

 3월이 되면 한국의 학교 운동장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의 입학식이 열린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새 가방을 메고 신주머니와 실내화를 가지고 오던 시절이다. 꽃피는 3월이라지만 꽃샘 추위가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74년도에 초임 발령을 받은 학교가 옥수동 산동네에 자리 잡은 옥정 초등학교였다. 한 교실에 70명 가까운 어린이들이 공부했다. 선풍기도 없었다. 더위를 식혀주는 것은 젖혀진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뿐이어서 여름에는 시큼한 땀내가 코에 뱄다.     어느 해 교장은 내가 원하지도 않은 1학년을 맡겼다. 꼬마들의 담임으로서 운동장 구령대에 올라가서 율동을 해야 했다. 묵묵히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성격으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던 나였기에 부담감이 컸다. 아이들만 있다면 서슴없이 율동을 할 용기는 있는데 나의 행동을 일일이 지켜보는 학부모 앞에 서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구령대에 올라가는 시간이었다. 흰 체육복으로 산뜻하게 갈아입고 구령대에 올랐다. 마이크를 잡는 순간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학부모들은 그저 말 없는 인형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오직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씨앗', '아침 해', '학교 종', '태극기', '꽃밭에서' 등을 율동으로 꾸며 지도했다.     ‘씨 씨 씨를 뿌리고, 꼭 꼭 물을 주었죠, 하룻밤 이틀 밤 쉿쉿쉬 뽀드득 뽀드득 뽀드득 싹이 났어요.’     손을 모아 둥그런 아침 해를 만들고, 주먹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 윗니와 아랫니를 닦고 깨끗이 세수하고 단정히 머리 빗고 옷 입고 거울 보는 모습, 밥을 꼭꼭 씹어 먹고 가방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율동으로 표현했다. 입학생들이 행동으로 실천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하도록 했다. 율동이 끝나면 각 반별로 학교 교실 둘러보기, 화장실 사용법 알기, 교통안전 등 기본 학교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지도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 학교에 익숙해질 즈음엔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와 학교 내 정원과 학교 주변의 산에서 꽃들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의 함성과 순박한 웃음이 피어난다. 밝게 미소 짓는 진달래꽃,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꽃, 춤추는 벚꽃, 수줍은 살구꽃, 주위를 밝히는 노란 개나리꽃처럼 아이들은 저마다 특유의 색깔로 꽃봉오리를 피우며 환하게 웃는다. 이런 꽃들이 우리 반의 외향적인 아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는 아이, 얌전한 아이, 호기심이 많고 도전정신이 강한 아이 등 개개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지금은 쉰이 훌쩍 넘었을 그 시절의 아이들 모습이 내 앞에 내려앉는다.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래와 율동으로 무진 애를 썼던 시절이다. 그때가 정원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 속에서 피어난다. 지나간 내 젊은 날의 3월이 떠오른다. 이현인 / 수필가이 아침에 기본 학교생활 학교 운동장 초등학교 1학년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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